[도서] 책과 달린 40년 '아버지의 치부책'
[도서] 책과 달린 40년 '아버지의 치부책'
  • 한국증권신문 기자
  • 승인 2017.0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묵향 가득한 세상을 꿈꾸다'

국내 2위 도매상인 송인서적의 부도는 올해 초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거래 출판사 2000여 곳, 피해액 6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송인서적 사태는 매년 독서인구 감소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계에 큰 타격을 줬다. 송인의 부도로 대형 출판사는 물론 중소 출판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불러온 원인 분석과 해결 방안을 두고도 설왕설래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를 찍어내고 있는 현문인쇄사 이기현 사장의 이야기가 출간됐다.

 

운명을 바꾼 컬러책 한 권

 

이기현 사장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쇄 및 출판인들을 위한 사업에도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 문화를 전수하고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출판과 인쇄라고 생각하기 때문. 그 종사자들이 사회의 존경과 보람을 느끼면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책은 시골 소년의 운명을 바꾼 컬러책 한 권에서 시작된다. 시골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던 아버지 덕에 소년 이기현은 일찍이 경영에 눈뜨게 된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아버지를 보고 치부책을 넘겨받아 방앗간의 악성 채무자들을 찾아나선 것. 아버지도 해결하지 못한 채무자들을 상대로 수금이 성사되자 공부는 나중에 하고 우선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취직을 결심한다. 그리고 우연히 접한 컬러책에 매료돼 인쇄기술자의 꿈을 가지고 15살에 무작정 상경, 인쇄소 수습 사환이 된다.

아버지의 치부책은 그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와 중견 기업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과정의 이야기다.

 

책과 함께 한 40

 

1970년대 한국의 인쇄계가 활판에서 옵셋으로 전환되는 시절의 풍경도 담았다. 당시 소년 이기현이 인쇄업에 입문한 1970년대는 활판인쇄 전성기였다. 활판인쇄에는 주조, 문선, 식자, 정판, 지형, 연판, 활판, 제본의 과정이 있었는데 그것을 각각 전문가들이 분담해 부서별로 처리했다. 인쇄의 과정은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했다. 인쇄 기술 전수도 도제식으로 전수되었기 때문에 업무 환경은 엄격했고 규율은 혹독했다.

그는 3년 안에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착실히 실력을 쌓은 결과, 기술자 대우를 받을 무렵 인쇄 영업직으로 전직한다. 청년 기현의 꿈은 기술자가 아니라 인쇄 경영에 있었기에 영업을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생각 속의 소리 꼴을 찾아서편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친구들이 모아준 창업자금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영업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매출의 50%를 담당할 정도로 성과를 내자 동료들을 배려했다. 매출 실적이 안 나오는 동료를 위해 거래처를 확보해 주고 영업 노하우도 전수해 줬다. 조건 없는 배려는 나중에 엄청난 힘으로 돌아왔다. 창업자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십시일반으로 모은 친구들의 쌈짓돈이 큰 보탬이 됐던 것.

IMF 위기를 기회로 삼은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당시 저자가 창업 후 승승장구했던 인쇄업에도 IMF의 위기가 찾아왔다. 일감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치솟는 환율 때문에 밤마다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 위기의 근원을 살핀 끝에 인쇄물 수출이라는 묘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일본 수출이 성사되자 치솟는 환율은 걱정거리가 아니라 도약의 발판이 됐다. 자동차나 선박, 반도체 같은 품목뿐만 아니라 인쇄물도 수출품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주효했던 것이다.

이후 저자는 꾸준히 출판의 활로를 생각하게 된다.

그가 경영하는 현문미디어출판사는 2007년에 한국 출판사 최초로 일본에 법인 출판사를 설립한다. 현문 일본 법인은 국내 유명 작가의 창작 동화를 번역, 소개하고 일본 전국 도서관에 보급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책과 함께한 40,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놀랄 만큼 단순하고 평범하다. 뿐만 아니라 명쾌하다.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투지, 기본과 원칙, 성실, 감사, 남을 위한 배려 등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처절한 사투와 끊임없는 노력 등 비범한 면이 자리 잡고 있다.

책은 좌절의 순간마다 자신을 들어올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도 녹여냈다. 이 외에도 대박을 노리는 심마니보다 인삼밭 주인처럼 좋은 책을 꾸준히 펴내는 것이 출판의 바른 길이라는 경영관이 독자에게 따뜻함을 전한다.

<저자 이기현/ 출판사 현문미디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