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 ‘경영권’을 두고 혈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롯데를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일본 회사들에 대한 지배구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귀국한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구조와 우호지분과 관련해선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다”고 답을 회피했다. 외신과 인터뷰한 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아버지의 음성파일과 문서, 동영상 등을 국내방송에 공개했지만 정작 중요한 지분 구조에 대해 추가 정보를 내놓지 않았다.
최근 SBS와의 인터뷰에서 “롯데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광윤사다. 그다음이 우리사주다. 이 두 개를 합하면 절반이 넘는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그 이전에 ‘누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왕자의 난이 장기전에 돌입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 질문에 대한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자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실질적 롯데 주인 “L투자”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는 ㈜호텔롯데다. 호텔롯데 지분을 많이 가진 쪽이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등 80개 계열사의 주인이 된다. 호텔롯데 지분은 일본계 자본이 99% 소유하고 있다. 주식회사 L투자회사 11곳(72.65%), 롯데홀딩스(19.07%), 광윤사(5.45%) 등이다. 이에 따라 호텔롯데는 1990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등록하며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일본에 적을 둔 이 기업들의 지분구조는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여있다.
지난달 말 왕자의 난이 처음 일어났을 때 국내 언론은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광윤사가 27.56%,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이 각 20%씩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해왔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추정치일뿐이다.
현재까지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지난달 30일 신동주 전 일본 홀딩스 부회장이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롯데홀딩스의 의결권은 아버지(신격호 롯데 총괄회장)가 대표로 있는 자산관리회사가 33%다. 나는 2%가 안되는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32%를 넘기는 직원지주회 의결권을 더하면 3분의 2 정도가 된다. 아키오 씨(신동빈 롯데 회장)의 의결권은 롯데홀딩스도, 자산관리회사도 나보다 적다”고 말했다.
즉 롯데홀딩스는 자산관리회사(광윤사)가 지분 33%를 그 외 직원지주회 32%, 신동주 전 부회장 2%, 신동빈 회장 2% 미만 등을 소유하고 있단 얘기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어 신 전 부회장 말도 100%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 L2투자회사 주소지로 기재된 신격호 일본 자택
신동빈 ‘L투자’ 장악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영권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 회사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최근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이 L투자회사 대표이사로 등재됐다. 이 회사 역할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6일 일본 법무성이 발급한 L투자회사 법인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6월30일 L투자회사 10곳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7월31일자로 대표이사로 등기했다. 신 회장은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이 표면화됐던 지난달 말, 일본에 머무르며 등기이사 등 재작업을 마쳤다. 사실상 한국 롯데 경영권을 장악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L투자회사 대표이사 등재건을 두고 이 같은 해석이 가능한 것은 L투자회사가 보유한 지분 때문이다. L투자회사는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 지분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단일 최대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지분율 19.07%)이지만 L투자회사 11곳의 지분을 모으면 72.65%가 된다.
따라서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한데 이어 L투자회사 대표이사 자리까지 차지한 것은 사실상 한ㆍ일 롯데를 모두 장악하기 위한 수순으로 해석되고 있다.
초점은 L투자회사의 지분율이다. L투자회사의 최대주주가 롯데홀딩스이거나 광윤사라면 실질적으로 두 회사를 장악하는 자가 L투자회사의 지배자가 된다.
전문가들은 “신동빈 회장이 L투자회사의 지분에서도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롯데까지 손에 넣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L투자회사 지분구조는 안개속이지만 신격호 총괄회장 등 총수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신 총괄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한 특수목적법인(SPC)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실제 롯데알미늄 지분 34.92%를 보유해 최대주주인 L제2투자회사의 경우 주소가 일본국 동경도 시부야쿠 하츠다이 2-25-31이다. 이 집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이름인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문패가 붙어있다. 이외에 다른 L투자회사 주소 역시 일본 롯데홀딩스 주소나 신격호 회장 자택으로 돼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계에서는 12개나 되는 L 투자회사들은 신격호 회장이 창업 초기 사업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금융권 인사는 “외부 자금보다 계열사가 가진 자금으로 사업을 꾸려가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경영 방침상 L투자회사들에 대해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들도 출자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렇다면 자본시장법뿐 아니라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어 당연히 공시를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L2투자 회사의 정보가 공개되면 롯데 지배구조를 파악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며 “롯데그룹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