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부산시청 등 지자체에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이전 공문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정부가 최근 시마네현의 소위 「독도의 날」 행사에 고위급 인사를 참석시키는 등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지속하는 가운데 이 문제가 불거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23일 정치권과 정부, 부산 지자체 등과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장관 윤병세)는 지난 14일 부산시청과 부산시의회, 부산동구청에 ‘국제 예양과 도로법 시행령 등 국내법에 어긋나는 사항이므로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내려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지자체 관계자는 일주일 전 외교부로부터 소녀상을 옮기라는 공문을 받았지만 난처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30일 시민단체 주도로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부산 동구청이 도로법 시행령 등 위반을 이유로 철거에 나섰지만 시민들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다시 설치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교부는 애초에 지난해 12월 시민단체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건립하려고 하자 “해당 지자체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외교공관 보호에 관련된 국제 예양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사실상 소녀상 이전을 요구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지난 1월 국회에 출석해서 “국제사회에서는 외교공관이나 영사공관 앞에 어떤 시설물이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 입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측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일 갈등을 풀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 실제로 윤 장관은 독일 본에서 현지시간 1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만나 소녀상 문제에 대해 “국제예양 및 관행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서 원만히 해결되도록 가능한 노력을 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 측은 주한 일본대사 복귀 조건으로 줄곧 '노력'이 아닌 '실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가 다시 한 번 소녀상 이전을 시도할 경우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단체와의 마찰이 예상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민간 단체의 일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면서 공문을 통해 옮기라고 하는 것은 이중적”이라면서 “비겁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과연 국내적·국제적으로 꼬인 소녀상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