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무력을 움직일 수 있는 삼군부 오위의 절제사, 내금위 갑사, 의금부, 병조, 한성부의 군사들을 단속하도록 합시다.”
김종서가 영의정 황보인에게 건의했다.
“경복궁 천추전 빈청으로 가기 전에 병조, 형조 판서와 한성 부윤을 불러서 의논합시다.”
“빈청은 붕어하신 천추전에 설치하는 것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김종서가 서둘러 일어서면서 말했다.
문종 임금이 승하한 첫날은 무사히 저물었다. 천추전에 빈청이 설치되고 내금위 갑사들이 엄중한 경계를 폈다. 세자 홍위는 빈청에서 밤을 새웠다. 김종서도 집에 가서 갑옷과 투구를 쓰고 빈청에 나왔다. 세종 임금이 하사한 활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백발 노장군의 모습에는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위엄이 흘렀다.
조선의 장수라면 김종서를 으뜸으로 꼽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그가 군사를 움직이면 목숨을 걸고 따라올 군사들이 많았다. 최윤덕 같은 장수가 살아 있었다면 물론 으뜸일 것이지만 죽은 지 오래였다.
김종서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장수는 이징옥, 박호문, 조극관, 조석강 등이지만 박호문과 이징옥은 북쪽 변경에 가 있었다.
멀리서 김종서의 모습을 보고 있던 수양대군의 가신, 건달들은 공연히 오금이 저렸다. 안평대군을 따라온 이현로 등 수하들도 빈청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서성이며 초조해 했다.
그렇게 임금 없는 첫날밤이 지나갔다.
빈청 주변의 긴장은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나흘째 되는 날 김종서와 황보인 등 의정부의 결단으로 새 임금의 즉위식이 근정전에서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단종 임금이 용상에 오르는 의식은 혜빈 양 씨가 도왔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도 엄숙한 표정으로 식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많은 대신들은 두 대군이 흉악한 발톱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히 수양대군을 경계한 김종서는 단종의 신변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황보인이 영의정이기는 하지만 정사는 거의 김종서에게 맡겼다. 김종서는 우의정에서 좌의정으로 승진하고 우의정에는 정분이 기용되었다. 김종서는 군사를 다루는 부서를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군부의 주요 인사에 자기 사람을 배치했다.
병조 판서에 조극관, 병조 정랑으로 조충손을 앉혔다. 두 요직으로 삼군 오위의 병권이 장악되었다. 또한 윤처공을 군기판사로, 조번을 군기 녹사로 임명했다. 대신 수양대군에게 줄 섰다고 생각되는 무신들은 해임하거나 다른 자리로 보냈다. 그중에 중요한 인물이 홍달손이었다.
수양대군이 아끼는 가신 중의 한 사람이 홍달손이었다. 무신인 홍달손은 권람이 추천해서 한성부에 갑사로 근무해 왔다. 추천은 권람이 했으나 사람을 잘 다루는 한명회와 더 가까이 지냈다.
“제가 홍달손과 마음이 통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홍달손을 큰일에 가담토록 만들어 놓았다는 말을 한명회는 이렇게 표현했다. 수양대군도 홍달손이 한 몫 할 것이라고 늘 칭찬해 왔다.
그런데 김종서가 홍달손을 수천 명의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첨절제사에서 해임시켜 본직으로 복귀시켰다.
“늙은 호랑이가 기어이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구나.”
홍달손이 인사를 오자 수양대군은 김종서에 대해 몹시 불쾌한 마음을 드러냈다.
“마마, 허나 오히려 잘 된 일인 것 같습니다.”
한명회가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등된 자리로 쫓겨 왔는데 무엇이 잘된 일인가?”
수양대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늘 기발한 의견을 잘 내는 한명회라 그의 입을 쳐다보았다.
“홍달손의 원직이 한성 감순 아닙니까?”
감순(監巡)이란 한성의 각 성문의 근무 태세를 순회하며 감독하는 감투를 말한다.
“감순의 자리로 돌아왔으니 성 안에서 적어도 수백 명의 군사는 동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좋은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선사포에서 군사를 동원하자면 시간도 걸리고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명회의 설명을 듣던 수양대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호랑이가 포수를 끌어들였구먼.”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권람이 맞장구를 쳤다.